"스위스 AI 석사 유학생이 첫 여름방학을 보내는 방법" 제목이 거창한만큼 방학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방법에 대한 글이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 글은 긴긴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 가득한 글이 되겠습니다.
3.5개월의 긴긴 여름방학
취리히 대학교는 6월~7월에 봄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9월 중순에 가을학기 개강을 해요. 저는 시험에 6월 초에 일찍 끝난 편이라 여름 방학이 3.5개월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한국행도 급 결정했던 것이었어요. 여름방학은 길지만 반대로 겨울방학은 한 달 남짓으로 굉장히 짧거든요.
첫 한 달은 한국에서 꿀같은 휴식
일단 첫 한달 간은 한국에서 호사스럽게 지냈습니다. 스위스에서 영어와 독일어 때문에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참 답답한 일이 많은데요. 한국에 있는 동안은 정말 귀가 뻥뻥 뚫린 느낌!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그 편안함과 안락한 집,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집밥, 유학생에게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어요.
덕분에 몸무게는 급속도로 불어났고 스위스에서 지켜오던 공부 루틴도 모두 망가져버렸습니다. 제가 한국에 갔을 때가 딱 장마철이었고, 짧은 장마가 끝나자마자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었어요. 날씨 때문에 더 나태해진 것도 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니까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누워서 폰을 보거나 잠을 자게 되더라고요.
사실 부모님은 비행 일정을 바꿔서 더 있다 가라고 하셨고 저도 많이 흔들렸지만, 더욱 나태해질 것만 같아 원래 일정대로 스위스에 돌아왔습니다.
남은 방학은 다음학기 준비
지난 학기 돌아보기
스위스에 돌아오니 진짜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한국에 있던 시간이 마냥 꿈 같았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학기에 한 과목을 fail했어요. 첫 학기라 4과목 밖에 안 들어서 상대적으로 공부할 시간도 많았고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성적이 안 좋거나 fail한 과목이 생겨서 개인적으로는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때문에 자신감도 떨어지고 심적으로 위축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공부고 뭐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 해야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일단 지난 학기 때 했던 제 공부방법을 돌이켜봤어요. 어떤 부분이 잘 못되었고 비효율적이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공부에 왕도가 어디 있겠어요. 결국 공부를 잘 하려면 간단하죠.
- 예습, 복습 철저히 하기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고 모르는 것을 끝까지 이해하기
- 연습문제는 답을 보고 풀지말고 내 힘으로 먼저 풀기
- 누군가에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내 것으로 만들기
이전 학기 때는 머리로 알면서도 실천은 못했던 것 같아 다음 학기는 이 기본에 충실해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강할 과목 관련 내용 공부하기
취리히 대학교는 8월 중순부터 수강신청이지만, 그 전에 가을학기에 개설되는 강의 목록과 강의계획서를 모두 볼 수 있어요. 저도 일단 6~7과목 정도 담아두었는데요. 그리고 다시는 그 어떤 과목도 fail 하고 싶지 않아 강의계획서를 보고 필요한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Foundation of Data Science는 수학적인 내용이 많은 과목이고 선형대수, 미적분, 확률를 requirement로 요구해요. 그래서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강의를 Udemy를 통해 영어로 듣고 있어요. 미적분, 확률과 통계는 대학원 지원 전 선수과목이었기 때문에 이미 들은 과목인데요. 이게 참 들어도 들어도 헷갈리는 내용들이라 이번에는 영어로 들으며 반복학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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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emy에서 듣고 있는 강의들 |
또한 다음 학기부터는 석사과정 수업도 들을 예정인데요. 강화학습, NLP 등 머신러닝 수업도 들을 예정이에요. 그래서 Hands on Machine Learning 책과 부트캠프 때 배웠던 내용들을 다시 조금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영어공부는 루틴으로
유학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가 영어잖아요.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있기만 한다고 해서 영어가 늘지는 않더라고요. 영어실력을 한층 더 올리기 위해서는 영어공부를 따로 해야한다고 절실히 느꼈고 방학 때부터 루틴으로 만드려고 노력 중이에요. 영어는 영어기사 읽기, 라이브아카데미 유튜브, 팟캐스트, 영어원서, 영어일기 쓰기를 통해 진짜 닥치는 대로 하고 있어요. 일단은 인풋을 많이 늘리려고 합니다.
영어공부는 학기 중에 아무리 바빠도 지속할 수 있게 루틴으로 만들고 싶어서 지금부터 열심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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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션으로 habit tracking |
친구들은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이렇게 여름 방학 계획을 세웠는데도 이상하게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세운 계획들이 방향은 제대로 잡은건지, 잘하고 있는건지 확신이 안 섰죠. 그래서 숙소에 있는 친구들에게 첫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봤고, 이런 답변들이 돌아왔어요.
- 시험도 없는데 공부를 왜 해? 운동하고 여행하고 여름을 즐겨.
- 이미 알찬 방학을 보내고 있네. 가을학기는 길고 힘들어. 방학 때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말고 다음 학기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해.
따뜻한 말들에 긴장되어서 딱딱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fail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지를 못했구나, 또 fail할까봐 많이 두렵구나'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방학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fail한 일 때문에 더 심했던 것 같거든요. fail은 이미 내 손을 떠난 과거의 일이고 fail한 과목은 또 들으면 되고, fail 또 할 수도 있는거지!(하지만 하지는 말자...) 좀 더 가볍게 넘기고 이 여름 방학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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