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를 무사히 마치며
2월 중순에 첫 학기를 시작한 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느낄 새도 없이 벌써 6월이 되었어요. 강의실도 잘못 찾아가고, 학교 시스템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헤맸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꽤나 모든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강의실도 구글맵을 사용하지 않고 척척 찾아가고 가끔은 교수님께 질문도 하는 어엿한 석사준비생이 되었어요.
(아직 온전한 석사생이 아닌 이유는 제가 석사과정을 위한 requirement인 학부 수업만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평균적으로 학기당 30 ETS를 듣는 것을 권유하지만, 저는 첫 학기를 적응기간으로 두고 개설된 requirement 수업만 신청해서 21ETS, 4과목만 들었습니다. 시간표상으로는 하루에 1개의 수업이 있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학기였어요.
하지만, 제 마음은 여유로울 수가 없죠. 쭉쭉 나가는 수업진도, 쏟아지는 영어와 새로운 개념들로 수업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수업시간 90분 동안 하나도 못 알아듣고 앉아있기만 한 날들도 꽤 많았답니다. 제 머리가 영어를 다 튕겨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수업 시간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듣고 또 듣는 것 뿐이라 수업은 수업시간을 착각한 적 딱 한 번 빼고는 모두 개근했습니다.
처음에는 제 짧은 집중력과 영어실력에 많이 좌절했는데요. 이게 영어 문제도 있지만 확실히 아는 내용이 나올 때는 영어가 잘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내용 이해의 문제도 꽤 크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그래서 같은 내용을 한국어로도 공부했어요.
수업마다 exercise session이 있었는데 각 topic 별로 연습문제, 응용문제를 teaching assistant들이 풀이해주는 세션이었어요. 다른 학생들은 미리 다 풀어와서 질문 폭격을 해대는데, 정작 문제 이해를 못해서 못 풀어갔던 저는 그 시간이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은 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던 게 시험준비를 하면서, 몰랐던 내용들이 이해가 가면서 세션에 들었던 내용들이 사-악 연결이 되는거에요. 매 세션마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속도로 이해하지 못하는 제 자신에 자괴감이 많이 들었는데, 보고 또 보고, 반복해서 내용을 보다보니 시험 전에는 어떻게든 이해가 되긴 하더라구요. 그 때 깨달았어요. 결국 시험으로 평가되는건데 조금 느리더라도 시험 전에 이해가 되면 되는거구나. 평소에 조급해하며 스스로를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겠구나.
그리고 그동안 평소에도 꽤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두루뭉술하게 이해한 내용은 이해를 못한 것과 다름 없더라고요. 평소에도 시험기간처럼 꼼꼼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첫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는 영어 독해 시험이 추가된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문제를 잘못 이해하면 아는 내용도 틀리기 때문입니다. 연습문제를 풀어볼 때도 독해 문제로 엉뚱한 답을 쓴 적이 몇 번이나 되었어요.
그래서 시간이 참 부족합니다. 나의 영어독해 실력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문제만 몇 번을 읽고 또 읽기 때문이죠. 영어가 부족하니 공부부터 시험까지 전반적으로 참... 힘들어요.
수업내용은 그럭저럭 이해를 했어도 연습문제나 응용문제는 난이도가 확 올라가더라고요....? 아니 교수님 그럼 어려운 문제도 수업시간에 다뤄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시험문제는 얼마나 어렵고 헷갈릴까 덜컥 겁이 났어요.
FS25(25년 봄학기) 과목별후기
저는 올해 석사과정을 위한 requirement 과목들만 4개 들었어요. 그 중 3개는 기말고사가 있었고 1개는 학기 내내 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Database System
한 학기 동안, 그리고 기말고사까지 저에게 좌절감을 크게 안겨준 과목이에요. 강의와 Exercise session으로 구성되어 있고 데이터베이스, physiclals system, 쿼리문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배웁니다. 이 수업은 특히 교수님의 영어(영어를 잘하는 친구도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했어요), 복잡한 쿼리문, 수학적 접근 때문에 특히 어려웠습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이지만 기말고사 시험지에 반은 답을 못한 과목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정말 애증의 과목. 주변에 물어보니 꽤나 악명 높은 과목이었어요. 스위스는 6점 만점(높을수록 좋음)인데 절반만 맞은 사람도 5점대가 나왔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이번 시험도 분위기를 보니 모두 어려워했던 것 같아 패스가 가능한 4점만 제발 나오기를 바라는 중입니다.
시험문제는 exercise session에서 다루지 않은,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 중에서도 꽤나 구석진 곳에 있는 내용이 출제되어서 문제를 풀 때도 배신감을 느꼈는데요. 이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 꼼꼼히 모든 내용을 봐야하는구나 싶었어요.
Software Engineering
Software Engineering은 고작 3ETS 밖에 안되면서 유일하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었고, 기말고사 직전까지 수업을 진행했던 과목입니다. 이 과목은 3/4이 교수님의 강의, 4/1은 주변 학생과 특정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어요. 그리고 미리 예습할 자료를 줍니다. 그 자료를 토대로 매 수업 시작 전 5분간 퀴즈 4문제를 풀어요. 처음에는 꼬박꼬박 수업을 나가다가 주변 학생과 토론하는 시간이 너무 싫어서 강의 녹화본으로 수업을 듣곤 했습니다.
이 수업은 software engineering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뤘어요. 프로세스 종류, 디자인, 아키텍처, 윤리 등등. 사실 내용은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퀴즈와 시험문제는 꽤 까다로웠어요. 가상의 상황을 주고 배운 내용을 적용해서 문제를 푸는 형식이었어요. 그런데 보기는 말장난 같은, 정말 헷갈리게 나왔어요. 그래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마다 문제와 보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정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Software Engineering Lab
Software Engineering의 실습 그 자체입니다. 이 과목은 뭔가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학생들이 직접 멘땅에 헤딩하며 공부하고 알아내서 팀원들과 하나의 웹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웹 개발이나 코딩 팀 프로젝트는 해본 적이 없어서 입학 전부터 정말 걱정했던 과목이었어요. 그래서 입학 전에 웹 개발 풀스택 강의를 Udemy에서 미리 들어뒀어요.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과목은 개인 프로젝트와 팀 프로젝트로 구성되는데, 개인 프로젝트를 통과해야만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요.
개인 프로젝트는 로그인, 유저 목록 조회, 유저 프로필 변경 등 비교적 간단한 백엔드, 프론트엔드를 구현하는 것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저는 (둘 중 굳이 고르자면) 백엔드보다는 프론트엔드가 잘 맞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는데요. 백엔드의 자바 코드를 특히 이해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프론트엔드는 결과물이 바로바로 눈에 보이니까 훨씬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개인 프로젝트를 할 때는 정말 수많은 에러를 만나서 통과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고, 그래서 많은 시간을 투자했었어요. 팀 프로젝트까지 끝낸 지금 돌이켜보니 이 모든 과정에 익숙해져서 개인 프로젝트는 꽤 간단한 거였구나 느낌이 들어요.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성장을 했나봅니다.
사실 요즘 ChatGPT, Claude, Gemini 등 AI만 잘 사용하면 코드 작성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거든요. 그래서인지 개인과제 제출 후에 코드에 대해 정말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코드를 복붙만 해서 자신의 코드를 이해하지 못했던 지인은 개인과제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팀 과제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팀 과제 초반에 절반 이상이 개인과제를 탈락해버려서 팀이 와해되었어요. 저는 스위스 친구들로만 구성되어 있던 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커스텀 룰 적용이 가능한 포커게임을 만들기로 하고, 팀원들에게 폐만 끼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말 운이 좋게도 팀원들이 어느 하나 꾀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었고, 서로 소통도 잘 되어서 아주 원활하게 팀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팀원들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는데 감동 그 자체. 팀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수업 방식이 막막하고 원망스러웠는데, 돌이켜보니 배운 것도 남은 것도 많은 과목이었어요.
Foundation of Computing 1
이 과목은 이산수학과 굉장히 유사했어요. 저는 이산수학을 사이버대학교에서 시간제 수업으로 이수를 했는데 학교에서 이 과목을 또 들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아는 내용이 많이 나와서 수업 듣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기초 강의라 그런지 교수님이 엄청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예를 들어 '관계' 개념을 들어가기 전에 '함수'의 정의부터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주셨죠. Exercise session과 기말고사에 출제된 문제들도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마운 과목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자
이번 여름 방학은 다음 학기 수업 준비와 영어 공부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특히 내용을 잘 알면 영어도 잘 들린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에 다음 학기에서 주로 다룰 개념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도 미리 예습을 하려고 합니다.
영어는 뭐 말할 필요도 없이 열심히 해야겠죠. 미드, 팟캐스트, 입트영, 영자신문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영어를 공부할 계획이에요. 다음에 영어공부에 대해서도 글을 남겨볼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UZH에서 첫 학기를 준비하는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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